팝업책의 대가 로버트 제임스 사부다
1965년 5월생인 로버트는 팝업북 아티스트이자 페이퍼 엔지니어입니다.
그는 처음 도서 패키지 디자이너로 일했고, 이후 삽화를 그리다가 1994년 어린이들을 위한 팝업북을 만들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등의 팝업북을 만들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뉴욕타임스 어린이 책 베스트셀러 작가 1위를 여러 차례 차지했고, 그의 책은 25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되어 500만 권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팝업책과 사랑에 빠지다
한 때 팝업책을 사랑해서 이것저것 구입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것은 당연하게도(?)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책들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구입했던 책은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습니다. 아직 번역본이 나오기 전이었기에 원어로 구입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입체적으로 떠 오르는 그림들을 넋을 잃고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야기는 당연히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림도 독특하고 아름다웠지만, 어떻게 종이를 오리고 붙이면 이렇게나 예술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때는 그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책들에도 눈을 돌려 '오즈의 마법사' '공룡들' 같은 책들도 계속해서 사들였습니다. 이 책들도 역시 원어판으로 구입했습니다. 이야기마다 새로운 팝업들을 볼 수 있으니 너무나 재밌었습니다. 바빠지면서 팝업책의 존재를 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인어공주' 번역본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구입했지요. 그리고 잊었던 팝업책 추억을 되새기며 읽어 봤습니다.

디즈니가 아닌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인어공주의 원작자는 안데르센입니다. 그리고 인어공주는 비극에 가까운 동화고 그래서 더 가슴에 남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디즈니 버전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에 놀랐습니다. 1989년에 디즈니에서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인 것이, 그동안 원작의 비극적인 결말을 안타까워하던 독자들의 맘을 위로해 준다고 생각해서 한편으론 기뻤습니다. 게다가 행복한 인어공주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침체기였던 디즈니의 위상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이는 원작이 아닙니다. 디즈니에 의해 각색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흥행한 애니메이션은 책으로 나오고, 다시 동화로 재 각색되며 오히려 안데르센 인어공주보다 유명해지게 됐습니다. 자라던 어린이들은 그런 그림책을 통해 인어공주를 접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어공주=해피엔딩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스티브 사부다의 인어공주도 구입하기 전에 잠깐 걱정을 했습니다. 이야기가 디즈니 버전일까, 안데르센 원작일까 하면서 말이죠. 이런 걱정을 한다는 자체가 사실 우스운 일이기도 합니다. 원작의 각색 버전이 유명해지는 것을 걱정하다니오. 이는 아마도 불행한 결말이지만, 그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아끼는 마음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로버트 사부다의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원작을 나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맘 편하게 책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예술품 같은 구조물들과 이야기
로버트 사부다의 '인어공주'도 역시 아름답습니다. 그림도 그러하거니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열리는 구조물들은 비록 종이로 만들어졌음에도 과학적 구조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1. 첫 장은 인어공주가 사는 인어 왕국입니다. 거대한 산호 모습의 왕국에는 인어들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구멍들이 여기저기 뚫려 있고, 그곳에서 인어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 인어공주는 다섯 언니들이 있었습니다. 언니들은 나이가 열다섯이 되면 바다 위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언니들로부터 바다 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호기심을 키우는 막내 인어공주.
열다섯 생일, 인어공주는 자신의 차례가 되어 물 위로 올라갔다가 멋진 배 위에서 파티가 벌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왕자를 발견합니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2. 둘째장은 왕자가 타고 있는 바다 위의 배입니다. 뱃머리와 배를 덮치는 파도가 역동적으로 보입니다. 종이와 실을 연결하여 돛을 형상화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칩니다. 인어공주는 가까스로 왕자를 살립니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몰래 육지에 두고 피합니다. 자신은 인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소녀가 왕자를 구하는 걸 보고 왕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이 자라납니다.

3. 셋째장은 마녀의 성입니다. 해골, 뼈들을 이용해서 해골 모양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풍기는 성을 표현했습니다.
>>너무나 왕자가 그립고 이미 사랑의 열병으로 힘든 인어공주는 마녀에게 인간과 같은 다리를 달라고 부탁합니다.
마녀는 인어 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막내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탐냅니다.
인어공주는 자신의 목소리와 인간의 다리를 맞바꿉니다. 인간의 다리로 걸을 때마다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거라고 마녀는 말했습니다.
마녀는 또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4. 넷째장은 왕자의 궁궐 숲입니다.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고 궁전의 담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지그재그로 나무를 세워서 숲의 느낌을 잘 표현했습니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만납니다. 왕자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황홀한 춤솜씨에 감탄했습니다. 밤마다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찾아와 돌아오라 속삭였지만 그러기에 공주는 왕자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왕자는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을 하러 떠나게 되었습니다. 인어공주에게 자신을 구한 소녀와 닮았다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면 너와 결혼할 텐데..라고 아쉬워하며 이웃나라로 출항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주를 보고 자신을 구한 소녀가 공주였다며 행복해했습니다. 그리고 인어공주는 슬퍼졌지요.

5. 다섯 장은 왕자의 결혼식입니다. 커다란 배 위에서 펼쳐지는 성대한 결혼식이 잘 표현돼 있습니다. 높은 천장과 길게 드리워진 베일, 하객들, 색색의 꽃들과 기둥 표현이 아름답습니다.
이런, 인어공주가 신부의 드레스를 잡아주고 있네요.
>>왕자는 공주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인어공주는 그때까지 왕자와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오늘이 인어공주에게는 마지막 밤이 될 테니까요. 깊은 밤, 언니들이 마녀에게 머리카락을 팔아 가져온 단검을 인어공주에게 전해 줍니다. 그 검으로 왕자의 심장을 찌르고 그 피가 다리에 닿으면 다시 인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인어공주는 왕자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인어공주는 바다로 검을 던지고 자신도 뛰어듭니다. 결국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마치며>>
이야기의 마무리는 원작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만 이 책이 주는 매력은 분명 있습니다. 팝업으로 뜨는 이미지들은 내가 상상하던 그것들을 형상화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이야기들을 구체화시키게 해 주기도 하고, 또 입체적인 이미지를 보노라면 그 기술에 감탄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너무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아이들은 이 이미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읽지 않고도 이야기를 상상합니다. '커다란 배 아래에 파도가 크게 치고 있으니 곧 배가 부서질 것 같아', '나무 숲에서 공주랑 왕자가 사이좋게 산책을 하고 있어', '결혼식이 너무 예뻐, 나도 결혼식 저렇게 하고 싶어'처럼 말이죠.
팝업책은 종이로 만든 과학 동화책 같습니다. 다른 동화가 텍스트와 그림으로 이야기에 빠진다면, 팝업책은 신기한 종이 동작으로 호기심까지 잡아 내니까요.
이번 주는 팝업책을 오래 들여다볼 것 같습니다.